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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

여행의 향기

  • 기자명 손혁기 SR 홍보부장
  • 입력 2024.05.15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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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도착해 공항 1번 게이트를 나서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워싱턴야자수다. 이국적 풍경이 어서 와. 여기가 제주야라고 반긴다. 여행 일정이 없는 출장이라도 육지 사람으로서 이곳에 서면 마음이 들뜬다. 하지만 풍경보다 먼저 만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제주의 냄새다. 바다에서 실려 온 내음, 한라산에 자라는 나무들이 내뿜은 향기, 오랜 시간 강제 금연한 여행객들이 급하게 피우는 담배 연기 냄새까지. 야자수는 뭍에 있는 쇼핑몰이나 대형 카페에서도 볼 수 있지만, 제주에서 만나는 감흥을 주지는 않는다. 같은 야자수 풍경이지만 냄새가 다르다.

10여 년 전 여수에서 열린 국제행사 홍보업무를 담당했다. 지역 브랜딩이 중요한 과제인 만큼 서울에서 여수를 자주 오갔다. 고속열차가 개통하기 전이라 주로 새마을 열차를 이용했는데 4시간 넘게 타고 가서 여수EXPO역에 내리면 남도에 왔다는 걸 코가 제일 먼저 알았다. 오동도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바다 향이 실려 왔다. 행사가 열리기 1년 전부터는 그곳에서 살았다. 이제는 반대로 용산역에 내렸을 때 코가 먼저 반응했다. 사람들 사이로 자동차 매연과 먼지가 뒤섞인 냄새가 서울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렸다.

여행에서 이국적이다 라는 느낌을 가장 먼저 주는 것은 향기다. 같은 아시아라도 일본과 중국이 다르고, 태국과 필리핀의 냄새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유럽의 도시들도 마찬가지다. 네이버 AI ‘클로바X’에게 여행지에서 냄새가 나는 이유를 물으니 기후와 환경, 문화와 음식, 위생 상태, 개인의 취향 등에 따라 달라지며, 냄새가 다르더라도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모범적인 답안까지 내놨다.

여행의 향기는 주관적이다. 좋은 냄새를 향기’, 싫은 냄새를 악취라고 구분하지만 클로바X’가 말하는 것처럼 개인의 취향이고 또 변덕이 심하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사람은 향기보다 악취에 더 민감하다. 위험한 것에서 나는 냄새를 악취로 느끼는 객체가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아기의 냄새는 좋은 것이고, 노인의 냄새는 반대가 됐다. 다른 냄새가 나는 사람은 경계해야 했고, 악취가 나는 곳은 건강에 좋지 않은 것으로 인식했다. 그런데 이상한 냄새라고 느껴도 안전이 확인될 때쯤이면 코도 무뎌진다. 가장 민감하지만 반대로 가장 빨리 적응하는 것도 후각이다.

직장에 취업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권에 도장을 찍은 곳이 태국 방콕이었다. 도착하자마자 공항에서부터 코가 괴로웠다. 후덥지근한 바람 속에 낯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음식도 거북했다. 그릇을 제대로 헹구지 않았는지 음식마다 세재 냄새가 났다. 땀이 자주 나서 향수를 많이 뿌렸는지 볶음국수에서 화장품 냄새도 났다. 이쯤에서 짐작하겠지만 팍치때문이었다. 중국에서는 샹차이’, 우리는 고수라고 부르는 향신료다. 지금은 고수를 즐긴다. 훠궈를 먹을 때 고수가 빠지면 서운하다. 쌀국수에서 고수가 빠지면 맛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집에서도 화분에 고수를 키워서 삼겹살에 싸서 먹는다.

향기는 진짜와 가짜도 가른다. 가평의 쁘띠프랑스, 하동의 최참판댁에 가보면 프랑스 마을과 조선 시대 가옥을 재현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독특한 분위기의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되돌아올 때 무언가 허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나중에 안동에서 고택체험을 하면서 느꼈다. 군불을 피워 가마솥에 지은 밥을 먹고, 따뜻한 온돌방에서 이불을 깔고 자면서 고택이 뿜는 향기가 온전히 느껴졌다. 밥 짓는 연기, 걸어놓은 매주, 주변을 둘러싼 나무들이 품어내는 피톤치드가 한옥의 나무 사이사이에 배어 있었다. 세월과 함께 묵은 냄새는 최고의 여행 경험이었다. 조화를 아무리 진짜처럼 만들어도 생화의 감동을 줄 수 없듯이 여행지의 향기는 하루아침에 꾸밀 수 없는 자산이다.

향기는 여행지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호감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2022년 이스라엘 연구팀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첫 만남에서 호감을 느껴 동성 친구가 된 이들의 티셔츠를 분석한 결과 화학성분의 거리가 비교군보다 상대적으로 가까웠다고 한다. 비슷한 냄새가 동료라고 느끼게 한 셈이다. 이성 간에는 냄새가 다른 것에 끌렸다. 1995년 스위스 생물학자 클라우스 베네킨트는 남성들이 이틀 동안 입은 티셔츠를 여성들에게 냄새 맡게 했는데, 자신과 다른 쪽을 골랐다. 유전자의 다양성이 종의 보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연구자들의 해석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 클로바X’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지만, 자기학습능력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공지능이 배우기 어려운 것이 향기다. 지식의 표현 가능성에 따라 요리사의 손맛, 명장의 기술처럼 경험으로 체화된 지식을 암묵지라 하고, 이야기나 데이터처럼 말이나 글로 전달될 수 있는 지식을 형식지로 구분하는데, 향기는 대표적인 암묵지다. 향기를 정확하게 무엇이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것도 각자의 경험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같은 향기라도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감정이 다르다. 미디어가 발달하고, 인공지능이 새로운 정보를 쏟아내도 각자의 향기로 기억되는 여행의 경험을 대체할 수는 없다.

향기 자료를 조사하기 위해 클로바X’‘ChatGPT’를 자주 찾았더니 알고리즘에 걸렸는지 유튜브에 인공지능 관련 콘텐츠가 줄줄이 떴다. 한 인공지능 전문가는 미국인의 노동시간이 1차 산업혁명 이후 주당 60시간에서 2차 산업혁명으로 40시간, 3차 산업혁명으로 34시간으로 줄었고,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이 완성되면 24시간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예견했다. 기계화가 육체노동을 대신하고, 인공지능이 지식노동까지 대체하면서 그만큼 여가가 늘어나리라 전망했다. 향기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손혁기(SR 홍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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