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도 딱 4일 남았다. 얼마 동안 겨울 날씨답지 않게 푸근하더니, 지난 한 주일 동안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며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었다. 성탄절도 8년 만에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전국적으로 대설특보도 내렸다. 눈이 내리는 날엔 겨울 하늘을 가로지르는 기러기 떼 사이로 하얀 눈발이 펄럭이며 떨어진다. 아직 바닷물이 밀려오지 않은 갯벌도 시베리아 벌판처럼 하얗게 된다. 금송 위에도 호랑가시나무 위에도 작은 소나무 위에도 솜사탕처럼 하얀 눈이 소복하다.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다. 겨울
지난달에는 어머니의 104세 생신을 축하하느라 오랜만에 6남매가 고향 집에 모였다. 1920년에 태어난 어머니는 한 세기를 족히 살아오셨다. 평일에는 돌보미 사회요양사가 있지만 주말이면 형제들이 돌아가며 어머니 돌보미 역할을 한다. 어머니 혼자서는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에서만 종일 지내신다. 화장실 오갈 때는 도우미가 필요하다. 아직은 정신이 맑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요즘 가끔씩 며느리를 헷갈린다. 아내 이름이 수정이인데 언제나 “어머님 저 누구예요?”하고 묻는다. “우리 넷째 며느리, 수정이” “어머님 감사합니다” 아내는 어
작은 숲 소나무 사이로 갯바람이 스친다. 솔잎 향이 온몸을 감싼다. 스치는 갯바람에 마당의 바람개비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돌아가는 바람개비 날개 사이로 초겨울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텃밭에서 가을 당근 한뿌리 뽑아 대충 씻어 한입 덥썩 물어본다. 입안에 당근의 향긋함이 가득 퍼져간다. 태안의 초겨울 아침이다. 지난 초여름 장맛비 웅덩이에서 구사일생 살아난 들고양이 새끼는 노랑이와 고등어, 점박이 세 마리다. 어미 삼색이는 새끼들에게 거처를 양보하고 떠난 후 가끔 밥만 먹으러 온다. 어미와 새끼들이 같이 살아도 되련만 들고양
가을이 오는가 싶더니 날씨가 초겨울처럼 쌀쌀하다. 세월이 갈수록 봄가을이 짧아진다. 태안 법산리 들판은 고추 수확이 끝나고 새롭게 난 마늘 싹들이 파릇파릇 새봄 같은 풍광을 이룬다. 겨우 내내 차가운 바닷바람과 눈보라를 이겨내고 내년 여름에는 한 알의 마늘이 통마늘로 태어난다. 생강은 지금이 한창 수확 철이다. 속이 꽉 찬 배추도 더 영글어지고 무도 더 이상 크지 않을 정도로 튼실히 보인다. 아내는 김장 준비 생각에 분주하다. 멸치 새우젓갈은 벌써 준비했다. 소금은 일본 후쿠시마 방류 이전에 준비해야 한다고 동네 염전에서 미리 구입
누군가는 깊어 가는 가을의 쓸쓸함에 대하여 노래한다. 도종환 시인은 〈쓸쓸한 세상〉에 대해 노래한다. 쓸쓸함이란 외롭고 허전하다는 의미이다. 외롭다는 것은 그리움이고 허전하다는 것은 마음 한구석이 비어있다는 의미이다. 가을 찬 바람이 불면 쓸쓸해진다. 화려한 국화꽃을 보아도 쓸쓸해지고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보아도 쓸쓸해진다. 떨어지는 낙엽 한 송이를 보아도 쓸쓸해지고 붉게 물들어 바닷속으로 떨어지는 태양을 보면 더 쓸쓸해진다. 도종환 시인은 이 세상이 쓸쓸하여 꽃이 피고 새들이 난다고 한다. 산다는 것이 쓸쓸하여 파도가 바위에 부딪
가을을 재촉하던 비가 내리더니 요즘은 완전한 가을날이다. 황금물결 출렁이는 들판 길을 걷노라면 몸 마음이 풍성해지고 콧노래도 절로 난다. 이른 봄 떠났던 기러기들이 편대를 이루어 우아한 날갯짓을 한다. 하얀 뭉개구름은 뭉실뭉실 다양한 형태를 이루며 파란 가을하늘을 화폭 삼는다. 아침엔 지난 봄날 심었던 고구마를 수확하였다. 고구마 한 순에서 여러 개의 고구마가 주렁주렁 매달려 산삼을 캐듯이 하나둘 땅속에서 꺼낸다. 팥도 깍지가 누렇게 익었다. 아주 작은 팥 한 알이 큰 줄기를 이루더니 20여 개의 깍지가 주렁주렁 달렸다, 하나의 팥
요즘 해 뜨는 방향이 동쪽에서 점점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우리는 해는 당연히 동쪽에서 뜬다고 생각한다. 하늘이 많이 보이는 정남향 집에서 사노라면 해가 뜨는 방향과 해의 높이가 계절마다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겨울철엔 거의 정남향에서 뜨는 해가, 봄이 되고 여름이 되면서 점차 동쪽으로 이동한다. 겨울철 해의 고도는 아주 낮아 낮이면 거실 깊숙이 햇볕이 들어온다. 여름철이 되면서 고도는 상당히 높아져 해가 지붕 바로 위로 지나가 거실에 햇볕이 거의 들지 않는다. 겨울철엔 따뜻하고 여름철엔 시원하다. 그래서 예전
모기 입이 돌아간다는 처서도 벌써 지났다. 밤의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떨어져 풀잎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는 백로도 지났다.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하다. 실제로 잔디밭이나 풒잎에 이슬이 상당히 맺혀 있어 신발이 많이 젖기도 한다. 태안 법산리는 바지락 캐기로 또 대표적인 작물인 마늘 심기 준비로 농어민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곧 다가올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을 대비해 이곳저곳 벌초를 하기도 한다. 2주 전에는 수퍼 블루문(Super blue moon)이 떠서 야구 중계하던 방송사 카메라가 달을 한가득 화면에 담아 보여주었다. 맨눈으로
처서가 지나니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귀뚜라미들의 요란한 합창이 새벽을 연다. 오늘도 동네 앞 갯벌엔 바닷물이 들어오고 빠져나간다. 요즈음 이곳 태안 법산리는 갯벌의 바지락 채취가 한창이다. 폭염이 와도 국지성 소낙비가 몰아쳐도 주민들은 경운기를 몰고 갯벌로 향한다. 하루 80kg의 바지락을 캐면 20여만 원의 수입이 통장에 들어오니 이곳 주민들에게는 큰 수입이 된다. 지난 24일 일본의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었다. 이 바지락 채취는 언제까지 가능할까? 수산업은 끝이라는 어느 어민의 자조적인 인터뷰가 떠오른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 개인의 생각이나 가치관의 많은 부분이 사회라는 공동체에 의해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현대인은 행복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공동체가 물질적 이익에만 몰두한다. 순수하고 자발적인 전인격적인 참여는 거의 불가능하다. 경제적 이익에만 혈안이 된 사회 공동체의 아귀다툼에 정신적 안식처의 최후 보루인 가정마저 파괴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고독사에 대한 통계를 발표했다. 2021년 고독사 사망자 수는 총 3,378명으로 최근 5년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매년 남성 고독사가 여성 고독사에 비해
서울 초등학교의 2년 차 새내기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학교 교사들에 의하면 학부모들의 심각한 갑질이 있었다고 한다. 서울 교사 노동조합이 그 학교에 근무했거나 현재 근무 중인 교사들의 제보를 취합했다. 자료에 의하면 새내기 교사의 반에서 한 학생이 뒷자리 학생의 이마를 연필로 긋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후 가해자 학부모와 피해자 학부모가 새내기 교사에게 수십 통의 전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부모들은 그 교사에게 “학생들을 어떻게 관리하는 거냐, 당신은 교사의 자격이 없다”는 등의 폭언을 했다. 자신들 자녀들의 잘못을
영화 《엑스 마키나 Ex Machina, 2015》라는 A.I.(Artificial Intelligence)를 소재로 한 작품이 있다. 알렉스 가랜드가 감독과 시나리오를 맡았다. 영화에서는 인간의 심리를 간파해 인간을 유혹할 수 있을 정도의 정교한 AI 로봇이 등장한다. 전 세계 인터넷 검색의 90% 이상을 소화하는 회사에서 근무하는 칼렙(도넬 그리슨扮)은 AI 연구소장 네이든(오스카 아이삭扮)의 초청을 받는다. 네이든은 연구소의 기밀을 밖으로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AI 에이바(알라시아 비칸데르扮)의 연구를 칼렙에게 맡긴다.
우리 부부는 전원생활을 하면서 우연히 들고양이 집사가 되었다. 새끼 네 마리를 출산한 삼색 들고양이가 폭우 속에서 새끼들 생명을 잃어버릴 뻔했다. 우리가 새끼 고양이 네 마리를 구해 온 후 주차장에 만들어 준 집에서 어미는 두 달 이상 새끼를 잘 키우고 있다. 들고양이들의 특성상 사람에게 들키면 바로 새끼들을 물어 모르는 장소로 옮긴다. 어미 고양이는 지금까지는 우리를 신뢰하고 있는 듯하다. 새벽이면 현관 앞으로 쪼르르 달려와서 밥 달라며 꼬리도 치켜세우고 애교도 부린다. 삼색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 네 마리가 우리 일상의 많은
우리는 흔히 수확의 계절을 가을로 인식한다. 그러나 6월이 오면 태안의 들판은 온통 마늘 캐기 손길로 분주해진다. 작년 가을에 심었던 마늘이 추운 겨울과 봄을 지나 여름인 요즘 수확의 철이 된 것이다. 농어촌인 태안은 일손이 부족해 멀리 도심인 대전이나 세종시의 일자리 소개 센터를 의지하기도 한다. 이른 새벽녘부터 누렇게 변한 마늘밭에 도착한 관광버스에서 내린 낯선 이방인들이 마늘 캐기에 도전한다. 일이 서툴다 보니 마늘밭 주인의 성에 차지는 않지만 고마운 손길들이 아닐 수 없다. 나도 작년 가을에 이웃의 도움으로 적게나마 심은 마
라는 세계적인 뮤지컬이 있다. 는 영국 시인 T. S. 엘리엇의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라는 시집을 대본 삼아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작곡한 뮤지컬이다. 1981년 영국 런던 웨스트 엔드에서 초연을 했고 1년 후 미국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뮤지컬이다. 세계 4대 뮤지컬로 불리며 최고의 흥행에 성공한 뮤지컬이다. 뮤지컬 중 는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곡이다. 는 각자의 개성을 뽐내는 고양이들이 일 년에 한 번 여는 고양이 축제 '젤리클 볼'에서 펼치는 이야기를 다룬다. 고양이들은 객
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일은 어린이날. 8일은 어버이날,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가정의 달인 5월을 지나면서 ‘노 키즈 존(No Kids Zone)' 이 주요 뉴스거리 소재로 빈번히 등장하고 있다. ‘노키즈존'은 식당이나 공연장 등에서 영유아와 어린이 출입을 금지하는 곳을 말한다. 우리는 'No Kids Zone'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영미권에서는 'Kids-free zone'이라고 표현한다. 노키즈존에 대한 국내의 여론은 다양하다. 어떤 부모들은 노키즈존을 차별적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부모들은 노키즈존을 지지한다. 국가인권위
동네 아랫집 할아버지께서 87세로 세상을 뜨셨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지금 우리가 사는 집터의 큰 산을 개간해 아주 넓은 밭을 경작하셨다. 건강하고 부지런하셔서 별명이 인간 포크레인이었다. 그렇게 강인하던 분이 몰고 가던 오토바이가 논두렁으로 넘어지는 바람에 14년 동안이나 동갑내기 할머니의 병간호를 받다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저녁 무렵이면 할머니 울음소리가 집 밖까지 새어 나온다. 동갑내기 남편을 떠나보낸 할머니에게 이 봄날은 어떤 의미일까?올해 97세이신 큰 외숙을 뵈었다. 큰 외숙의 누님인 우리 어머님께서는
태안의 전원생활로 두 번째 봄날을 맞고 있다. 그동안 감자와 고구마를 많이 먹고 살았으면서도 심고 기르는 방법은 이제야 알았다. 감자는 알을 심고 고구마는 순을 심는다. 콩도 모든 콩이 다 밖으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완두콩이나 강낭콩은 줄기에서 열매를 맺지만 땅콩은 땅속에서 열매를 맺는다. 올봄에는 제일 먼저 당근 씨앗을 구해 고랑을 내고 줄이 지게 뿌렸다. 소위 줄 뿌리기 방법이다. 기온이 떨어지자 노심초사 차광막을 당근밭 위에 덮었다. 혹 씨앗이 얼어 싹이 트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서이다. 2주일 3주일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이제 다 못 헤는 것은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윤동주 시인의 의 시가 저절로 읊어지는 태안 법산리의 밤이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 온 날 밤 밤하늘의 별이 이처럼 많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가슴이 벅차올라 울컥했다. 어릴 적 외갓집의 평상에 누워 수많은 별을 본지 수십년 만에 본 밤하늘의 별 천국이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별빛이 물들은 밤같이 까만 눈동자’ 라는 노래도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아름다운 별밤이다.
2년 전 가을 태안의 법산리라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얼마간 때도 없는 이웃집 수탉 우는 소리에 잠을 설치곤 했다. 어린 시절 외가에서는 해가 뜰 무렵 새벽녘 수탉이 길게 목청껏 울면 외조부께서 안방 쪽문을 열며 일어나시곤 했다. 닭 키우는 이웃집에 닭들이 왜 때도 없이 우느냐고 물어보았다. 기상천외한 대답이 돌아왔다. 원래 수탉 한 마리에 암탉 다섯 마리가 정상인데 수탉이 많다 보니 수탉들이 서로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운다는 것이다. 어느 날 삼계탕 먹자고 연락이 왔다. 그리고 수탉들 우는 때가 새벽녘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