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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역사의 무덤을 파헤치다

파묘, 역사의 무덤을 파헤치다

  • 기자명 서재영 교수
  • 입력 2024.04.1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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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묘가 올해 첫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화제를 모았다. 특히 총선 기간 동안 이승만을 다룬 영화 건국전쟁과 대립각을 이루면서 영화 외적으로도 주목받았다. 영화는 점차 대중의 관심에서 잊혀져 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되새김질하게 한다.

파묘는 무속과 풍수지리 등을 소재로 곳곳에 항일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내용을 분석하지 않아도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소품에서부터 이런 메시지는 드러난다. 지관 상덕, 무당 화림과 봉길, 주지 원봉 등은 모두 독립운동가들의 이름과 겹친다. 차량번호 또한 광복절과 31운동, 해방을 연상시키는 숫자들이고, 포스터는 김좌진 장군의 필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장치를 아무리 촘촘하게 배치해도 구성과 내용이 좋지 않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파묘의 줄거리는 지관과 무당이 잘못된 조상의 묘를 파헤쳐 후손에게 미치는 재앙을 막는 것이다. 오컬트 장르를 즐기는 관객이라면 기괴한 소재나 줄거리 때문에 좋아했을 수도 있지만 필자는 소재와 줄거리 이면에 숨겨진 메시지가 더욱 흥미로웠다.

파묘에는 첩장(疊葬)’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무덤 아래 또 다른 무덤을 이중으로 쓴 것을 첩장이라고 한다. 이 영화도 겉으로는 풍수와 샤머니즘을 다루고 있지만 진짜 메시지는 표피적 서사 아래 무덤처럼 조용히 숨어 있다.

첩장 구조에 담긴 메시지

영화가 던진 첫째 메시지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무덤을 파헤치는 파묘(破墓)’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무덤에 묻혀 있는 주인공은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밑도 끝도 없이 부자가 된 친일파다. 영화는 파묘를 통해 친일파의 관을 불태움으로써 후손에게 드리운 재앙을 제거한다.

파묘는 무덤이라는 소재를 통해 역사의 무덤으로 눈을 돌리게 한다. 우리의 근대사는 친일 부역자를 청산하지 못하고 서둘러 덮어버린 무덤과 같다. 이승만은 반민특위를 무산시켰고, 친일파들은 이승만 정권 아래서 다시 득세했다. 악질적 친일 경찰 노덕술이 독립운동가 김원봉을 잡아다가 고문한 것은 우리 근대사가 얼마나 기괴하고 험한 것을 묻어 두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파묘는 이런 역사의 무덤을 파헤쳐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함을 역설한다. 그런 역사를 방치하면 후손에게 재앙이 되고,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망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묘는 흉지에 조성된 음험한 역사의 무덤을 파헤쳐 재앙의 뿌리를 제거하자는 메시지를 묻어 두었다.

그런데 파묘는 첩장이라는 설정을 통해 두 겹의 무덤을 파헤친다. 서둘러 덮은 근대사의 무덤에는 친일파의 관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관이 더 있다. 재앙의 진짜 뿌리는 친일파의 관 아래 숨겨져 있는 관인데 그 속에 겁나 험한 것이 있다. 험한 것의 정체는 1만 명을 죽인 다이묘의 악령이다. 악령이 깃든 이 관은 친일파의 무덤 밑에 숨겨져 있어 아무도 그 존재를 알지 못한다. 파묘는 진짜 험한 것의 실체를 직시하고 그것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말한다.

호랑이 허리와 세 개의 쇠말뚝

험한 것의 실체를 추적하면서 영화는 두 번째 주제인 쇠말뚝으로 옮겨 간다. 지관 상덕은 일제가 한반도의 정기를 끊기 위해 국토의 혈 자리에 쇠말뚝을 박았음을 알게 된다. 그것을 뽑아내기 위해 친일파의 무덤을 살피다가 또 다른 관 하나를 더 찾아낸다. 바로 험한 것이 숨어 있는 악령의 관이다. 상덕은 그 아래 쇠말뚝이 있을 줄 알았지만 끝내 찾지 못하면서 쇠말뚝의 정체는 물리적 사물이 아니란 걸 깨닫는다. 쇠말뚝의 정체는 친일파의 관 아래 숨겨져 있던 악령 그 자체였다. 영화는 악령에 대해 어떤 사물이나 생명에 붙어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쇠말뚝이 우리의 인식에 붙어 있는 정신내지는 인식일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영화가 상영되던 총선 기간 동안 우리는 그런 악령을 목격했다. 일제의 침략으로 조선이 근대화되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 이토 히로부미를 인재라고 찬양하는 성일종, 한국민의 수준은 일본인 발톱의 때만도 못하다는 장예찬, 일제강점기가 살기 더 좋았다는 조수진, 한국인의 반일 감정에는 피해의식과 열등의식이 병존한다는 정승연,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다는 정진석 등의 발언이다.

그런 뒤틀린 인식 때문에 일제의 침략을 옹호하고, 겁탈당한 소녀들의 희생을 조롱하고, 원전 오염수의 방류를 옹호하며, 공공장소에서 전범기인 욱일기의 사용을 금지한 조례를 폐지하려고 한다. 노덕술 등 눈에 보이는 친일파는 쉽게 알아볼 수 있지만 내면에 숨겨진 이런 쇠말뚝은 잘 보이지 않는다. 파묘는 그와 같이 보이지 않는 두 번째 쇠말뚝의 정체를 폭로한다.

영화는 후손에게 빙의된 친일파의 혼령을 통해 또 다른 쇠말뚝의 존재를 암시한다. 바로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라는 대목이다. 일제의 식민통치 결과 한반도는 허리가 잘린 분단국가가 되었다. 따라서 세 번째 쇠말뚝의 정체는 범의 형상을 한 한반도의 허리에 박힌 분단의 철조망이다.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험한 것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분단의 철책까지 제거해야 한다. 딸의 결혼식으로 영화가 마무리되는 것은 이를 암시하는 대목이다.

통일로 완성되는 파묘

상덕의 딸은 우주공학을 전공하고 독일에서 공학자로 일한다. 기괴한 근대사와 대비되는 합리와 이성의 세상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딸이 독일 청년과 결혼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독일은 우리처럼 분단의 쇠말뚝이 박힌 나라였지만 그것을 극복한 국가다. 그런 독일의 교훈을 본받아 통일을 완수할 때 비로소 쇠말뚝은 완전히 제거될 수 있다.

여우가 부러뜨린 범의 허리란 38선을 가로지른 철조망이다. 분단은 식민통치가 남긴 비극이자 겁나 험한 것의 진짜 실체다. 분단으로 인한 고통과 동족상잔의 비극은 식민통치 못지않은 고통을 주었다. 따라서 철책을 걷어내고 통일을 이룰 때 세 번째 쇠말뚝은 제거될 수 있다.

결국 파묘는 잘못된 역사의 무덤을 파헤쳐 역사를 바로 세우고, 침략의 원흉이 심어 놓은 왜곡된 가치관을 제거하자고 말한다. 나아가 여우가 끊어 놓은 범의 허리를 잇고 통일 세상을 이루자는 꿈을 담고 있다. 첩장 구조에 담겨 있는 숨은 이야기를 읽어낼 때 파묘가 전하고자 하는 진짜 흥미로운 메시지가 드러난다.

서재영(성균관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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