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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세상에 이익을 주는 사람인가?

누가 세상에 이익을 주는 사람인가?

  • 기자명 김응철 교수
  • 입력 2024.07.2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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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철의 삶의 오솔길

초기불교 경전인 ‘앙굿따라니까야’에는 “세상에 이익을 주는 세 종류의 사람”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세 종류의 사람이란 삼보에 귀의한 사람, 사성제의 지혜를 깨우친 사람, 그리고 해탈지견(解脫智見)을 성취한 사람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삼보에 귀의한 사람이란 깨달은 님에게 귀의하고, 올바른 가르침에 귀의하고, 거룩한 참모임에 귀의한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진리를 올바르게 깨닫고, 그것을 가르치고, 그리고 거룩한 참된 모임을 이끄는 사람과 그러한 사람들과 함께 하면 세상 사람을 이익되게 할 수 있다. 요약하면 불법승 삼보에 귀의한 사람들을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이 모여서 종교단체를 형성하고 세상을 이익되게 하겠다고 천명한다. 

그렇지만 종교에 귀의하거나 종교단체를 만든 사람들이라 해도 모든 사람들이 다 사회를 이익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인이라 해도 사회적 윤리와 도덕을 어긴다면 세상에 이익을 주기 보다는 악행으로 손해를 끼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악행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한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은 대부분 종교라는 이름으로 사람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깨달은 님에 귀의하고, 올바른 가르침에 귀의하고, 거룩한 참모임에 귀의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욱 철저하게 계행을 지키고 사회적 윤리와 도덕을 중시함으로써 세상 사람을 이익되게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를 포함한 다수의 종교들이 계율의 실천을 종교인의 첫 번째 덕목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둘째, 사람으로서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고, ‘이것은 괴로움의 발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고,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고,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다면, 그러한 사람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분명히 알기 위해서는 괴로움이라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람은 고집멸도 사성제의 지혜를 체득하고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이 어떤 괴로움에 처해 있는지를 분명하게 관찰하고 그 것이 발생한 원인과 소멸, 그리고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서 분명하게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세상을 이익되게 할 수 있다. 지혜를 체득했다는 것은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줄 아는 지혜, 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고 판단할 줄 아는 지혜, 그리고 실천하는 지혜를 갖춘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런 것을 갖춘 사람을 통찰지, 통찰력을 갖추었다고 말한다.

질병으로 괴로움을 겪는 사람에 대해 그 원인을 분명하게 알고, 이를 치료해 주는 사람들을 의사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괴로움의 원인이 질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괴로움도 있고, 사회관계 속에서 괴로움을 겪는 사람도 있고, 내면의 정신적 갈등으로 괴로움에 빠진 사람도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 괴로움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고, 그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을 이익되게 하고, 향상과 발전의 길로 인도하고,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이끌어 줄 수 있다. 

셋째, 사람으로서 번뇌를 부수고 번뇌 없이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현세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깨달아 성취한다면, 그러한 사람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여기서 번뇌가 없다는 것은 내면의 족쇄가 소멸되어 걸림 없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족쇄가 소멸된 사람을 해탈했다고 말하는데 그 방법에 있어서 마음에 의한 심해탈과 지혜로 성취한 혜해탈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라도 그것을 사회적으로 실천할 때 해탈지견을 성취했다고 말한다. 해탈지견은 안팎으로 모든 족쇄가 소멸되어 걸림 없이 많은 사람을 이익되게 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어 줄 수 있는 지혜와 식견을 갖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을 해탈지견을 성취한 자라고 말한다. 

해탈지견을 성취한 사람은 자신의 이익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이익과 향상과 행복을 위해 자신의 지혜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이와 같은 세 종류의 덕목은 종교인에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스포츠인, 정치인, 경제인, 문화예술인 등을 비롯하여 각 방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공익을 증진시키고, 공동선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질이라 말할 수 있다.

운동선수들은 자신의 이익과 명예와 부를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보고, 그들이 성취한 최고의 실력을 보면서 즐거워한다. 때문에 운동선수들도 세상을 이익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비록 프로선수들이 생계수단으로 혹은 돈을 벌기 위해서 운동을 한다 해도 그 과정이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행복하게 한다면 그 자체로 이미 세상을 이익되게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선수들이 진실로 세상을 이익되게 하고자 한다면 윤리와 도덕적 기준을 벗어나지 않는 자질을 갖추어야 하고, 운동에 있어서 일반인들 보다는 뛰어난 실력과 지혜를 갖추어야 하고, 운동장에서 걸림 없이 마음껏 운동실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반면에 아무리 우수하고 세계적인 운동선수라 해도 폭행에 연루되거나 약물에 중독되거나 도박에 빠지고 승부조작에 연루된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을 괴롭게 만든다. 또한 실력으로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기 보다는 파벌을 만들고 연줄에 얽매여 다른 선수들을 좌절케 한다면 그것은 사회적으로 더 큰 폐해를 만들게 된다. 

운동선수들은 경기장에서 실력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어떤 사회구성원들 보다도 더 투명하게 세상 사람들을 즐겁고, 행복하고, 이익되게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의 땀과 노력, 그들이 성취한 지혜와 성과들은 가감 없이 대중들에게 전달되면서 감동을 주고 박수갈채를 받는다. 

비록 운동장 뒤편에서 벌어지는 좋지 않은 모습들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운동선수의 책임이 아니라 일부 이익에 눈이 멀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악행이라는 것을 대중들은 알고 있다. 사회적 윤리와 도덕적 자질, 지혜와 식견을 갖춘 운동선수들이 은퇴 후에도 어떤 족쇄도 없이 걸림 없는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을 위해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한다면 우리사회는 그 만큼 더 성숙된 사회로 발전할 것이다.

김응철(중앙승가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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