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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이 하는 말

연꽃이 하는 말

  • 기자명 서재영 교수
  • 입력 2024.08.0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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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의 줄탁동시

어느 날 부처님은 법문을 기다리는 대중들을 향해 한 송이 연꽃을 들어 보였다. 모두가 그 의중을 몰랐지만 가섭만이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꽃을 드니 미소 지었다는 염화미소(拈華微笑)의 이야기다. 바야흐로 따가운 햇살 아래 연꽃이 곱게 피는 계절이 왔다. 굳이 누군가 연꽃을 들어 보이지 않더라도 지금은 곳곳에 연꽃이 가득하다. 하지만 연꽃을 보아도 우리는 가섭이 미소 지은 의미를 알 수 없다. 어쩌면 연꽃이 어떤 꽃인지 알게 된다면 그 미소에 담긴 뜻을 헤아리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연꽃의 세 가지 이름

모든 꽃이 그렇겠지만 연꽃의 자태는 유난히 곱다. 파란 하늘 아래 하늘거리는 연꽃 한 송이만 있으면 그곳이 어디든 그 공간은 빛이 난다. 연꽃은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주변 풍광까지 정화하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활짝 핀 연꽃을 좋아하지만, 연꽃은 피는 시기마다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원효는 연꽃의 일생을 세 시기로 나누고, 각기 다른 이름으로 소개했다.

첫째는 굴마라(屈摩羅)로 꽃송이가 뾰족하게 솟아나는 때를 말한다. 이때의 꽃잎은 앙다문 입술처럼 단단하고 결기에 차 있다. 얼어붙은 땅을 뚫고 솟아나는 것도 아닌데도 연꽃 봉우리는 창끝처럼 날카롭다. 그와 같은 당찬 결기와 예리함이 없다면 어떤 꽃도 피어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약한 의지로는 바람조차 가를 수 없기에 생명은 굳은 의지 끝에 탄생함을 보여준다.

둘째는 분타리(分陀利)로 연꽃이 활짝 핀 절정의 순간을 말한다. 긴 꽃대 위에서 활짝 핀 연꽃은 온 우주를 받쳐 든 양 의기양양하다. 싱그러운 꽃잎은 생기가 넘쳐나고, 노란 꽃술은 향기로 진동한다. 지나가는 미풍의 손짓에도 연꽃은 온몸을 흔들며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렇게 화려한 꽃을 보고 있으면 그것이 진창에 뿌리내린 식물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만다. 용솟음치는 에너지가 빚어낸 연꽃의 아름다움에는 생명의 환희가 충만해 있다.

셋째는 가마라(迦摩羅)로 연잎이 한올 한올 떨어지는 조락의 순간을 말한다. 온 세상을 품은 듯 고운 자태를 뽐냈지만, 무엇이든 절정에 이르면 쇠락의 순간을 만나게 된다. 눈부시던 꽃잎은 햇살의 무게조차 견디지 못하고 흩어진다. 실바람에도 속절없이 떨어진 꽃잎은 진창에 처박혀 검게 썩어간다. 가마라는 제아무리 눈부신 영광을 누려도 한세상 풍미한 뒤에는 쇠락의 길로 가야 한다는 서늘한 이치를 일깨워 준다.

더러움을 먹고 맑음을 피우는 꽃

이와 같은 연꽃을 설명하는 대표적 수식어가 처염상정(處染常淨)’이다. ‘더러운 곳에 있지만 항상 맑다는 뜻이다. 연꽃은 진창에 뿌리내리고 있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고 맑은 꽃을 피워낸다. 연꽃의 이런 특징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것들을 음미해 볼 수 있다.

첫째, 연꽃이 서 있는 곳이 진창이라는 점이다. 대보적경에 보면 연꽃은 높은 언덕이나 들판에서 자라지 않고 낮고 습한 진흙 속에 핀다.고 했다. 연꽃은 깨끗한 물가에서도 피지 않고, 양지바른 언덕에서도 피지 않는다. 대신 낮고 더러운 진창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 인간이 서 있는 공간 또한 번뇌와 고통으로 가득 찬 사바세계이다. 하지만 바로 그곳이 우리가 서 있는 삶의 무대이다. 연꽃이 뿌리 내린 진창이라는 장소적 특징은 고해를 떠도는 우리들도 눈부신 꽃을 피울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둘째, 주변의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는 불염(不染)이다. 연꽃은 흙먼지에 물들지 않고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한다. “향 산 종이에는 향내가 나고, 생선 묶은 새끼줄에는 비린내가 난다.”고 했지만, 연꽃은 진창에서도 향기로운 꽃을 피워낸다. 클로드 모네의 그림에는 꽃과 함께 푸른 연잎도 한가득 그려져 있다. 꽃잎 못지않게 연잎 또한 연꽃을 이루는 핵심 요소임을 보여준다. 원효는 그런 연잎에 대해 물에 젖지 않고(不着水渧) 티끌에 오염되지 않는다(不染塵垢)’고 했다. 실제로 연잎에는 장대비가 쏟아져도 빗물은 구슬처럼 또르륵 굴러떨어지고 만다. 진창에 오염되지 않는 꽃잎과 같이 연잎도 빗물에 젖지 않는다.

셋째, 역경과 고난을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는 능력이다.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을 만들고,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를 만든다.”고 했다. 그러나 연꽃은 오염된 진창의 물을 먹고도 눈부신 꽃을 피워낸다. 자신이 처한 고난과 역경에 좌절하지 않고 그것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우리도 세상이 더럽다고 욕하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고난과 역경마저 성장의 자양분으로 소화해 내는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

넷째, 더러움도 깨끗함도 없는 불구부정(不垢不淨)의 이치다. 연꽃은 흙탕물을 벗어나지 않고 진창에 뿌리를 내리고 산다. 맑은 꽃을 피운 그 진창이란 썩은 나뭇잎이고, 온갖 사체들의 찌꺼기들이다. 그와 같이 죽고 썩은 것들이 연꽃을 피우는 자양분이 된다. 이렇게 보면 생명의 순환에 참여하는 것들은 깨끗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다. 깨끗한 것은 깨끗한 대로 더러운 것은 더러운 대로 주어진 몫을 다한다. 그것이 생명을 유지하는 중도의 이치다.

다섯째,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다는 무아(無我)의 이치다. 떨어진 꽃잎은 진창에 박혀 썩지만 그렇게 썩어 다시 꽃을 피우는 자양분이 된다.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듯이 연꽃의 조락은 새 생명을 잉태하는 기름이 된다. 생성과 조락, 더러움과 깨끗함의 순환은 연꽃이라는 실체가 본래 없음을 말해준다. 연꽃은 연잎이 받은 햇살과 뿌리에서 올린 진창의 자양분과 바람과 빗물이 어우러져 핀 관계의 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는 연꽃의 실체는 진흙이고, 빗물이고, 바람이고 햇살이다. 연꽃은 그와 같은 중층적 관계의 산물이므로 연꽃이라는 실체는 없다. 따라서 떨어지는 연잎은 개체가 있다는 환상을 깨고 관계라는 전체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이처럼 연꽃은 함축적인 메시지를 품고 있기에 법화경에서는 묘법연화(妙法蓮華)’라는 표현을 썼다. ‘신비로운 진리를 연꽃에 비유한 것이다. 연꽃이 진흙을 먹고 눈부신 꽃을 피워내는 것처럼 번뇌를 딛고 깨달음을 얻고, 고난을 성장의 밑거름으로 전환하고, 개체라는 환상을 깨고 전체와 어우러지는 관계의 회복이 곧 신비로운 진리일 것이다. 진창에 피어 있는 한 송이 연꽃을 만나면 우리도 엷은 미소를 지어보자.

서재영(성균관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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