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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광고와 반보주의

비교 광고와 반보주의

  • 기자명 김병희 교수
  • 입력 2024.05.3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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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 간에 광고 전쟁이 한창이다. 애플은 지난 57일의 렛 루스(Let Loose)’ 행사에서 박살내(Crush)!’라는 제목의 영상 광고를 공개했다. 광고에서는 미국가수 소니 앤 셰어(Sonny And Cher)<내게 필요한 건 너뿐이야(All I Ever Need is You, 1971)>라는 배경음악에 맞춰 사물의 파괴 장면을 보여주었다. 광고가 시작되면 인간의 창의성을 상징하는 물건들이 놓여있다. 잠시 후, 거대한 유압 프레스가 서서히 내려오더니 이들을 모두 부숴버린다. 트럼펫, 피아노, 조각상, 페인트, 레코드플레이어, 카메라, 메트로놈, 오락기, 기타 같은 인간의 창의성을 상징하는 사물들은 프레스 유압에 짓눌려 처참히 파괴된다. 유압 프레스가 인간의 창작 도구를 짓이기는 장면을 슬로모션과 클로즈업 샷으로 보여주며 극적 효과를 연출한 다음, 유압 프레스가 열리자 얇은 아이패드가 나타나며 새로운 M4칩의 성능을 강조한 광고였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사라진 자리에는 애플의 태블릿 PC인 아이패드 프로만 홀로 남았다. 아날로그 창작 도구를 대신할 13인치 아이패드 프로만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광고를 이처럼 만들었으리라. 창작 도구에 대한 배려심이 없고 창작자를 조롱하는 광고에 공감할 수 없다며, 많은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에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했다. 광고에서 아이패드의 성능을 과도하게 과장함으로써 예술과 창작 정신을 조롱했다는 비판이 들끓었다. 국내에서는 미국에서 제작한 애플 광고가 LG전자에서 만든 16년 전의 광고를 베꼈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황이었다. 비난 여론이 쉽게 가라앉지 않자 애플은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묘사한 이 광고가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다. 애플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토르 마이런 부사장은 현지 언론을 통해 이번 영상은 과녁을 빗나갔고 유감을 느낀다며 사과했고 텔레비전의 광고 노출도 철회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삼성전자 미국법인(삼성모바일US)은 현지시각 515일에 공식 SNS를 통해 언크러쉬(Uncrush)’라는 제목의 짧은 영상 광고를 노출했다. 이 광고는 창작자를 조롱했다고 비판받은 애플 광고를 저격하는 간접적인 비교 광고였다. 비비에이치 미국(BBH USA)에서 제작한 삼성전자 광고는 어두컴컴한 방에 한 여성이 들어오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온갖 페인트가 묻어있는 부서진 물건들의 잔해 더미에 걸터앉아 부서진 기타를 집어 들고 연주를 시작한다. 기타는 불에 타고 구멍이 뚫려있다. 여성은 갤럭시탭 S9 울트라로 악보를 보며 흥겹게 기타를 연주한다. 연주 장면이 계속되다 마지막에는 창의성이 결코 꺾일 수는 없습니다(Creativity cannot be crushed).”라는 카피가 나오며 광고가 끝난다. 삼성전자는 소셜 미디어에 이 광고를 노출하면서 우리는 결코 창의성을 꺾지 않을 것입니다(We would never crush creativity).”라는 카피를 추가로 덧붙이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광고는 애플의 아이패드 광고를 우회적으로 저격한 비교 광고이다. 삼성전자가 광고의 제목을 언크러쉬라고 명명한 까닭은 애플 광고의 제목인 박살내(Crush)!’를 소환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터다. 비교 광고란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속성이나 가격에 따라 경쟁 브랜드와의 차별적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브랜드 이름과 모양 또는 상징 정보를 통해 자사 광고에 경쟁 브랜드를 노출하는 광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191일에 법적 지침이 마련된 이후부터 비교 광고가 활성화되었다. 비교 광고는 보통 직접적 비교나 간접적 비교 기법을 선택할 수 있는데, 삼성전자 광고에서는 애플의 브랜드 이름을 직접 호명하지 않고 상징적인 소품을 통해 애플을 암시했으니, 간접적인 비교 광고를 시도한 것이다.

비교 광고는 장단점이 있으며 유사한 상황이라도 소비자에게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광고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 비교 광고의 장점은 상품 정보를 구체적으로 비교해 상품 간의 차이를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주고, 어떤 속성이 중요한지 소비자에게 명확하게 전달하고, 소비자가 경쟁 상품과 서비스에 대해 합리적으로 선택하도록 도와주며, 구매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해 경쟁 제품끼리의 품질 개선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반면에 비교 광고의 단점은 자사 광고에서 경쟁 브랜드의 노출을 반복하다 보면 경쟁 브랜드가 더 기억될 가능성이 있고,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가격이 하락되면 기업에 손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비교 광고를 자주 하면 자칫 경쟁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여줄 수 있고 소비자들이 비교 내용을 잘못 받아들인다면 의도한 광고 효과를 기대할 수 없으므로 주의해서 실행해야 한다. 비교 광고를 잘만 활용한다면 효과를 볼 가능성이 높지만, 자칫 잘못하면 경쟁 브랜드를 비방하는 비방광고가 되어 소비자의 반감을 살 수도 있으므로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삼성전자의 언크러쉬광고는 비방광고가 아닌 정교하게 만들어진 비교 광고라 할 수 있다. 광고에서는 삼성의 태블릿 PC가 예술과 창작을 돕는 도구라는 메시지를 전달했으며 애플을 간접적이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삼성전자는 애플이 인간의 창의성을 조롱한다는 광고에 대해 사과한 상황에서, 논란이 사그라지기 전에 순발력 있게 대응하며 비교 광고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이 광고는 자사의 갤럭시탭 S9 울트라 제품이 경쟁 브랜드에 비해 우월하다는 점과 삼성 브랜드에서 지향하는 가치나 철학이 상대방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환기하는 굉장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비교 광고이다. 애플과 삼성전자의 광고전을 보면서 광고를 만들 때 메시지 표현의 수위를 얼마나 세심하게 조절해야 하는지 모두가 생각해보는 계기를 가졌으면 싶다. 광고는 동시대의 문화와 소비자 심리를 반영하기 때문에, 소품 하나에 어떤 상징성이 있는지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아마도 지금의 애플 광고가 2034년에 나왔다고 한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때쯤이면 인공지능이 아날로그 창작 도구를 모두 대체할 가능성이 높을 테니까, 사람들이 아날로그 창작 도구의 파괴 장면에 덜 민감하게 반응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광고에서 메시지 표현의 수위는 시대를 너무 앞서가도 안 되고, 반 발짝 정도만 앞서가는 반보주의(半步主義)’가 정답일 수 있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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