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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 ‘계략’ 버리지 않고선 ‘우호’도 없다

김성의 관풍

2024-09-12     김성 소장

일본 총리 기시다 후미오가 지난 6일 서울을 방문해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국민들이 더 편리하게 왕래할 수 있도록 사전입국심사등 출입국 간소화 방안을 적극 모색하기로 했다. 또 제3국에서 유사시 양국 재외국민들의 안전을 보호하는 재외국민보호 협력각서도 체결했다.

그러나 주변국 정세를 감안하면 양국 정상이 한가롭게 이런 논의만 했을 리 만무하다. 한미일은 태평양과 동해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가진 바 있다. 미국은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한미일 군사동맹을 원하면서 일본이 앞장서기를 바라고 있다. 북중러 관계가 강화되면서 일본은 한국이 군사적으로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또 미국, 유럽, 중국에 맞서 일본을 중심으로 AI-반도체 산업의 국제적 클러스터 구축이 필요한 형편이다. 기시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외상일 때 박근혜 정부와 체결한 일본군 위안부 합의(201512)가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바랠 것이다. 이런 한국과 일본 주변의 안보-경제적 상황을 볼 때 비공식적으로는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발전 가능성, 한일 간의 AI-반도체 공동발전 논의, 일본군 위안부 및 강제징용 노동자 문제 마무리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었으리라는 추측이 든다. 또 거론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일본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협조에 감사했을 수도 있다.

지도자 사이 우정말고 국가적 과제산적

윤 대통령은 기시다와 12번씩 만나 정상간에 각별히 가까와졌을지 모르지만 일본 정부를 믿을 수 없는 불편한 일들은 무수히 널려있다.

기시다는 일본 헌법에 자위대의 지위 포함, ‘계엄령신설 등을 차기 총리의 중요한 과제로 내걸었다. 이렇게 주변국들을 긴장시켜 놓고선 과거 피해국인 우리나라에 찾아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독일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 스스로 나서서 철거를 요구해 9월 말 시한을 앞두고 있다. 일본 정부는 군함도에 이어 사도광산에 대해서도 약속했던 한국인 노동자의 강제동원문구를 표기하지 않아 또 속았다는 분노를 가져오고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1945년 침몰한 우키시마호의 승선자 명단이 없다고 지금까지 오리발을 내밀어 오더니 최근 정보가 공개되자 기시다 방한 하루 전에야 79년만에 인도주의 차원에서 그 일부를 한국 정부에 전달한 일이다. 이는 인도적 차원이 아니라 정략적 차원이다. 한국 언론 중 일부는 바보같이 한일정상이 가까워져서 선물로 받게됐다고 보도했다.

익사자 명단 제공, ‘인도적아니라 정략적

2차 대전 기간동안 한국인 수백만 명이 같은 국민이라는 명분으로 강제동원됐고, 수십 만명이 일본 본토는 물론 멀리 남태평양에서 희생됐다. 전쟁에 패하자 일본 정부는 그들이 외국인이라며 조속한 해결은 커녕 명단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방치해 왔다. 우리는 사건별로 나누어 이런 일본 정부를 국제 인권기구에 끊임없이 고발해야 한다. 한일조약에도 불구하고 79년간 덮어버린 과오에 대해 대가(代價)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 한국의 수많은 잘난 변호사들과 국제법 전문가들은 무얼하고 있었나? 전문가로서 이를 방기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기껏 명단 하나 내주고 선물이라고 생색내는 이런 일본 정부가 과연 그네들이 입버릇처럼 내세워 온 1998김대중-오부치공동선언에 따라 사과·반성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을까.

명단과 유해 가지고 장난치는건 반인권적새로운 한일 합의서필요

내년이면 한일수교 60주년을 맞게 된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조약으로 모든 일이 처리됐다고 하지만 우리는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이 남아있다. 일본 정부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첫째, 한일조약 이후에 외면했던 일들을 정리하기 위해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후원하는 새로운 한일 합의서가 필요하다. 이를 담당할 과거사 정리를 위한 한일민간인협의회도 구성해야 한다. 이번 우키시마호 명단 제공처럼 명단이나 유해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은 최말단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반인권적인 작태이다. 이런 식으로 명단을 받아서는 천년만년이 지나도 모두 해결될 수 없다. 한국이 일본 땅에서 유해발굴에 나설 수 없다. 따라서 일본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감춰둔 강제징용 노동자와 사망노동자 명단을 일괄적으로 공개하고, 유해발굴을 공동으로 추진하면서 적절한 보상도 해야 한다. 마침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가 지난 1일 있은 간토대지진 한국인 순난자 추념식에서 한일 공동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기 때문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렇게 나설 때 일본 정부가 진정으로 반성하고 사과한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일본이 군사적 위기나 대형 재난에 처했을 때 신속하게 도와줄 수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만큼 가까운 이웃이다. 하여 흉금을 터놓은 한일민간협력회의를 통해 새로운 우호관계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사과하라실천해야

둘째, 일본 정부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꿔져야 한다. 일본은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유엔군의 군수(軍需)기지로서, 공산세력을 막아낼 동북아시아 방파제 국가로서 필요성 때문에 1951년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에서 패전국의 지위를 벗었다. 한국은 전란(戰亂) 중이라 독도 영유권을 제대로 주장하지 못해 지금까지 논쟁거리로 남겨놓게 됐다. 그런다고 해서 일본의 역사적 과오가 지워진 것은 아니다. 하여 수억 명의 아시아인들을 살륙하고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끼친 전범(戰犯)들을 야스쿠니 신사에서 몰아내야 한다. 극단적 우익단체들도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 또 아직도 나치 부역자를 재판하고, 유대인 등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고 있는 독일로부터 배워야 한다. ‘사과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한국민들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 정부도 그동안 반성을 많이 해왔다” “그건 이제 끝내고 새로운 미래 라며 머리 속으로 계략(計略)’만 굴리는 자세를 버리고 진솔해져야 한다.

시검(試劍)’품고 있는 국민성으론 선린우호 불가능

셋째, 일본 국민을 대상으로 솔직한 교육이 필요하다. 한국의 국민정신은 홍익인간(弘益人間, 두루 사람을 이롭게 하라)정신이다. 생명관도 유학사상에 입각하여 호생오사(好生惡死,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한다)를 인간의 본성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일본은 이와 반대로 낙사오생(樂死惡生, 죽음을 즐기고 삶을 싫어한다)을 가치로 여겼다. 일본에 자리잡고 있는 무사도(武士道)’싸우다 죽는 것을 영예로 여긴다(戰死爲榮)’는 것이다. 1192년 가마쿠라 막부라는 무가(武家)정권이 들어선 뒤 4백여 년 동안 내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무사도(武士道) 정신이 자리잡게 됐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따라갔던 조선통신사 수행원들이 가장 혐오했던 것은 타메시기리할복(割腹)’이었다. 이들은 타메시기리를 시검(試劍)’이라고 불렀다. 칼이 잘 드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시체를 실험대상으로 삼아 베어보는 것을 말한다. 1748년 종사관으로 일본에 간 조명채는 참형을 받을 죄수가 있으면 여러 왜인이 앞을 다투어 칼을 시험하여 만두처럼 마구 찍는데, 조금도 측은지심이 없다. 또 어린 아이들이 와서 보게 하여 버릇을 들여 겁내지 않게 한다고 그 장면을 기록했다. 할복 역시 사형을 거부하고 스스로 죽겠다고 한 사람이 선택하는 방법으로 배를 가르고 내장을 끄집어내 던졌다는 기록이 있다. (박상휘 사무라이 사회를 관찰하다, 1. 삶과 죽음. 창비. 2018.) 이런 역사가 제국주의 침략기나 경제전쟁 시기에 국민정신으로 선양됐다. 또 다른 나라에 피해를 준 반인륜적인 역사는 국민적 수치라며 교과서에 제대로 수록하지 않다 보니 인권경시와 우월주의 풍조가 남아있게 됐다. 정치지도자끼리 만나서 성명만 발표한다고 해서 잘못된 인식이 해결될리 없다. 국민이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교육이 더 중요하다.

그런 일도 하지 않고서 껍데기만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양, 평화를 사랑하는 민주시민인 양 행세하는 것은 위선(僞善)이고 가식(假飾)이다. 시검을 전통으로 여기면서 화해와 평화를 말하는 것도 위선이다. 일본 정부와 국민은 마음 속에 간직한 칼(정신)을 내려놓는 일부터 해야 한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용기있는 정치인이 다음 일본 총리로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김 성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