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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라도도 쉽지 않다… 3년간 없던 ‘200이닝 선발’, 올해도 보기 힘들다

2024-09-10     한휘 기자
8일 광주 북구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 리그 키움 히어로즈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키움 선발 투수 아리엘 후라도가 역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스포츠한국 한휘 기자] 한 시즌 200이닝 투구는 한때 리그 최고의 ‘이닝이터’를 판가름하는 척도였다. 그러나 최근 몇 년에 이어 올해도 ‘200이닝 선발 투수’는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지난 9일 기준 2024 신한 SOL뱅크 KBO 리그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한 선수는 키움 히어로즈의 ‘에이스’ 아리엘 후라도다.

올 시즌 10승 7패 평균자책점 3.25로 호투하고 있는 후라도는 28경기에 선발 등판해 177⅓이닝을 소화했다. 2위에 오른 롯데 자이언츠 애런 윌커슨과 같은 경기를 소화하고도 8이닝을 더 던졌다.

후라도의 ‘선발 투수로서의 가치’는 두말하면 입 아프다. 이닝만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투구 내용도 훌륭하다. 퀄리티스타트(QS)도 22개로 리그 1위에, 퀄리티스타트 플러스(7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도 12개로 리그에서 가장 많다.

4월 4일 대구 수성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키움 선발 투수 아리엘 후라도가 역투하고 있다. (사진=키움 히어로즈)

경기당 소화 이닝도 6.33이닝으로 규정 이닝을 채운 선수 가운데 가장 많고, 평균 게임스코어도 56.18점으로 3번째로 높다. 타선의 지원 미비로 승리가 조금 적을 뿐, 후라도는 어엿한 키움의 1선발 노릇을 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후라도도 200이닝 고지를 돌파하는 것은 쉽지 않아보인다.

후라도는 로테이션을 고려했을 때 앞으로 3경기 정도 더 등판할 것으로 보인다. 200이닝까지는 22⅔이닝이 더 필요하니, 8이닝 이상 소화하는 경기가 한 번은 나와야 하고, 나머지 경기에서도 7이닝은 던져야 한다. 아무리 후라도라도 어려운 도전이다.

후라도도 이러니 다른 투수들은 200이닝 달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후라도를 제외하면 170이닝을 넘긴 선수도 없다.

지난달 21일 광주 북구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 리그 롯데 자이언츠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KIA 선발투수 양현종이 역투를 펼치고 있다. (사진=KIA 타이거즈)

그나마 윌커슨(28경기 169⅓이닝)과 KIA 타이거즈 양현종(27경기 162이닝)의 투구 이닝이 많긴 하지만, 선수당 많아야 4번 정도 더 등판할 수 있으니 200이닝은 언감생심이다.

이렇게 되면서 KBO에 200이닝 선발 투수가 다시 나오는 것은 1년 뒤로 미뤄질 공산이 크다.

선발 투수의 200이닝은 그 투수가 선발 투수의 역할을 1년 내내 온전히 해냈다는 반증이다. 긴 이닝을 소화할 수 있는 체력, 효율적으로 투구 수를 관리할 수 있는 경기 운영 능력, 빼어난 투구 내용까지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그만큼 200이닝 투수는 쉽게 볼 수 없다. 한 시즌 200이닝은 KBO 리그 역사를 통틀어 86번 나왔지만, 상당수는 투수 분업화의 개념이 미비하던 20세기에 나온 것이다.

2015년 이후 한 시즌 200이닝 기록 달성 사례. (기록 출처=KBO 기록실)

21세기로 범위를 좁히면 달성 사례는 22번으로 준다. 지금의 144경기 체제가 확립된 2015년 이후로는 7명뿐이며, 2020년 당시 kt 위즈 소속이던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35경기 207⅔이닝)가 마지막이다.

이후 2022시즌 키움 안우진(30경기 196이닝)과 NC 다이노스 드류 루친스키(31경기 193⅔이닝), 지난 시즌 두산 베어스 라울 알칸타라(31경기 192이닝)가 190이닝은 돌파했지만, 200이닝이라는 고지는 정복할 수 없었다.

올 시즌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이어가는 후라도조차 200이닝 달성이 쉽지 않다는 사실은, 앞으로도 200이닝 선발 투수가 예전보다 확연히 낮은 빈도로 등장할 것임을 이야기한다.

후라도는 올 시즌 이닝이터에게 필요한 모든 덕목을 갖췄다. 경기당 이닝 소화량도 상당하고, 이닝당 투구 수도 15.3개에 불과해 양현종과 함께 리그에서 가장 적다.

지난달 25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 리그 LG 트윈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 키움 선발 투수 아리엘 후라도가 투구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키움 히어로즈)

공격적인 승부 덕에 볼넷은 30개에 불과해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가운데 윌커슨(20개) 다음으로 적고, 낮은 평균자책점에서 보이듯 쉽게 무너지지도 않는다. 로테이션은 딱 한 번 걸렀을 뿐인데도 200이닝은 어렵다.

사실 이닝 소화량의 감소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리그 선발 투수 전체 평균 소화 이닝을 살펴보면,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5.2~5.4이닝을 거뜬히 찍던 것이 2022시즌 5.33이닝 이후 점차 내림세에 접어들었다.

특히나 올 시즌은 타고투저 광풍 속에 5.03이닝까지 줄어 2021시즌(5.07이닝) 이후로 가장 평균 소화 이닝이 적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200이닝 투수가 나오지 않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2013년 이후 선발 투수 경기당 소화 이닝 및 투구 수. (기록 출처=스탯티즈)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를 추측할 수 있지만, 선발 투수의 투구 수가 전반적으로 줄어든 것에 먼저 눈길이 간다.

실제로 선발 투수의 경기당 투구 수는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90개를 넘겼다. 그러나 2018년 이후로는 90개를 넘긴 적이 없고, 지난 시즌에는 역대 최저인 87.25구를 기록했다. 올 시즌은 현재까지 86.37구가 기록돼 최저 기록을 새로 쓸 기세다.

이전과 달리 선발 투수에게 무조건 100구 이상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으며, 메이저리그(MLB)와 마찬가지로 타자들의 수준 향상이 선발 투수들의 전력 투구를 유도하고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야구의 기록은 시대가 변하고 야구관이 변하면서 자연스레 달라진다. 200이닝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리그 최고의 이닝이터에게 주어지는 ‘칭호’와 같았다면, 앞으로는 그런 이닝이터들도 웬만해서는 넘보기 힘든 ‘고난도 업적’으로 남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