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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와 학습의 종말

2024-06-13     서재영 교수

전통적으로 지식을 생산하고 학습하는 것은 대학의 몫이었다. 하지만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각 대학에서도 교수자들을 대상으로 AI 교육을 개설하며 대책을 모색하고 있고, 대학원생들은 AI를 활용한 논문 작성법에 골몰하고 있다. AI를 잘 활용하면 연구의 효율을 높이고,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학생들의 창의적 학습과 객관적 평가를 위해서도 AI를 알아야 한다. AI를 활용하면 웬만한 과제는 프롬프트 몇 개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 읽고, 힘들게 리포트를 쓴 학생보다 AI를 활용한 학생이 더 좋은 성적을 받을 수도 있다. 모든 학생이 AI를 활용해도 문제는 남는다. 무료 버전과 유료 버전 간에는 성능 차이가 있기에 사용하는 버전에 따라 결과물의 차이가 날 것이다. 자연히 성적이 달라질 수 있고, 그의 인생에도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고민 끝에 개강 첫날 학생들에게 AI를 활용해 작성할 수 있는 과제는 부과하지 않겠다고 했다. 책을 읽고 토론하고, 강의 내용에 대한 학습과 토론 등 체험에 기반한 공부가 되도록 하겠다고 공지했다. 실질적 학습과 공평한 평가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그 결정은 의외의 결과를 낳았다. 수강 정정 기간이 끝나자 무려 70%의 학생들이 다른 강좌로 떠나버렸다.

학습을 대행하는 AI를 강의에서 배제하려고 했다가 내가 되치기를 당한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자료를 찾고, 텍스트를 요약하고, 논점을 잡아 글을 쓰는 것은 AI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다. 신기술에 빨리 적응한 학생들에게 전통적 방식의 학습은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고 느낄 수도 있다.

전통적 학습의 핵심은 정보를 암기하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불교 경전인 ‘아함경’은 칠엽굴에 모인 500 명의 비구들에 의해 결집되었다. 당시는 아직 문자가 없던 시절이라 결집도 문서를 편찬하고 책을 엮어내는 것이 아니었다. 붓다의 가르침을 암기하고 있던 제자가 자신이 들은 바를 구술하고, 그 내용이 다른 비구들의 기억과 일치하면 불설(佛說)로 채택되었다. 따라서 결집은 붓다에 대한 학습된 기억을 종합하고 공유하는 작업이었다.

결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된 내용이었기에 정보를 암기한 사람이 곧 텍스트였다. 인간 텍스트를 대표하는 인물은 다문제일(多聞第一)로 불리는 아난존자였다. 그는 붓다에게 들은 내용을 모두 암기하고 있다가 빠짐없이 구술했다. 그런 아난은 한 손에 정병을 든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병에 든 물을 저 병으로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옮겨 붓듯 붓다의 가르침을 온전히 전수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렇게 결집한 기억의 종합은 구전(口傳)이라는 방식을 통해 전승되었다. 최초로 성립된 경전이 구전을 뜻하는 ‘아가마(Agama)’에서 유래한 ‘아함경’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학습과 사색을 통해 지식이 전수되고, 종교가 탄생한 것이다.

문자가 발명되고, 책이 등장한 후에도 학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유교의 교육도 사서삼경을 비롯해 경전을 외우는 것이었다. 책을 통째로 외우는 과정을 통해 책에 담긴 정보는 인간에게 전이되었다. 책을 암기하여 더 이상 책이 필요 없어지면 떡을 하여 책거리라는 잔치를 벌였다. 책이라는 수단에서 인간이 독립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통적 학습은 암기를 통해 지식을 내재화하는 과정이었다. 기억된 정보를 바탕으로 인간은 새로운 이론이나 사유를 펼칠 수 있었다. 이를테면 AI의 딥러닝 같은 현상이 암기된 정보를 통해서 일어나는 셈이다.

그러나 정보가 디지털화되고,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학습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모든 정보가 디지털화되어 접속만 하면 되기에 사람들은 책을 소유할 필요가 없어졌다. 학습은 정보를 뇌에 탑재하는 것에서 클라우드에 업로드하는 과정으로 대체되었다. 제레미 리프킨이 말한 ‘소유의 종말’은 물리적 정보와 인간의 분리로 나타났다.

인터넷의 보편화와 함께 학습은 검색하고 편집하는 과정이 되었다. 지식은 검색만 하면 찾을 수 있지만 인간은 그만큼 의존적으로 변했다. 전통적 교육에서는 내용을 암기한 후에 책을 뗐기에 공부를 많이 할수록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지금은 학습 없이 인간과 정보의 분리가 선행되기에 접속이 차단되면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가 된다.

AI가 등장하면서 학습은 또 한 번의 변화에 직면했다. 오픈AI의 최신 버전인 ChatGPT4o는 검색하는 수고조차 필요치 않다. 연속대화 기능을 통해 사람과 대화하듯 묻기만 하면 답을 생성해 준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프롬프트 디자인이 중요했지만 이젠 묻기만 하면 답을 얻을 수 있다. 모든 정보는 AI에게 연결되어 있고, AI는 그런 정보를 종합하여 내가 찾는 답을 만들어 준다. 책을 소유하거나 텍스트를 암기할 필요도 없고, 검색하거나 편집할 필요도 없다. 단지 묻기만 하면 답은 즉각 생성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정보를 암기하고, 입력된 텍스트를 기반으로 추론하고, 답을 찾아 사색하면서 인지능력이 발전해 왔다. 지식을 내재화하고, 사유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지혜로운 존재인 호모 사피엔스가 되었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통해서 인간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다. 하지만 AI시대의 도래와 함께 인간이 인간다워졌던 학습은 AI에게 넘어갔다.

전통적으로 인간의 존엄과 능력은 그가 가진 정보량과 사색의 힘에서 나왔다. 하지만 AI시대의 도래와 함께 학습은 외주화되고, 사색은 AI의 몫이 되었다. AI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학습에 몰두하며 일체지자로 변신하는 동안 인간은 감각적 욕구에 매몰된 동물로 퇴화하는 중이다. 결국 AI로 인해 인간의 생물학적 지능은 1% 미만으로 축소될 것이라는 일론 머스크의 전망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서재영(성균관대 초빙교수)